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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문화역사관

  • 작성일 : 2018-05-28 08:17:49
  • 작성자 : 박창월
  • 조회수 : 31761 명
  • 추천수 : 1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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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수라간에서 점심식사 후
백제원의 복합문화공간인 부여생활사 박물관과
식물원을 보고
1시 40분경
백제문화역사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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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백제문화단지에
백제문화관을 착공하여 2006년 개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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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역사문화관은
백제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자료 수집으로
찬란했던
백제의 역사와 문화,
삶과 정치 사회, 예술둥을
오늘날의 시각으로 재현, 복원시켜
백제의 모습과
문화를 소개하고자 설립되었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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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능사 5층 목탑 조형물 -
- 능사 5층 목탑 -
목탑 심초석에서
국보288호인 '창왕명석조사리감(昌王銘石造舍利龕)'이
발굴되어 서기 567년 사리를 보안한
국내 최초로 재현된
백제시대 목탑으로 38m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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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정전 조형물 -
- 천정전(天政殿) -
사비궁의 정전으로
국가의 큰 정사를 하늘에 고하여 결정했다는
천정대에서 이름을 따왔고
왕의 즉위 의례,
신년 행사 등 각종 국가 의식이 거행되고
외국의 시신을 맞이하는
사비궁 내의 가장 중요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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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부장리에 있는
서산 부장리 고분군의 널무덤 목관에서 출토된 금동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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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봉덕리1호분에서 출토된  백제금동신발을
재현한 금동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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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왕궁, 사찰, 왕릉 따위의 벽이나 바닥을
장식하는데 쓰이던 벽돌을 전돌이라 하는데
무령왕릉과 송산리 6호분 등에서 출토된 문자가 새겨진
전돌은 웅진 천도 후
백제가 양나라의 무덤양식을 받아들이면서
제작된 것으로
사비시대에 본격적으로 제작되었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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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중흥을 위해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긴
제26대 성왕의 천도행렬의 모형.
사비 천도 행렬의 주인공 성왕(재위523~554)은
백제 제26대 왕으로  무녕왕의 아들이며
<일본서기>에는 明王 또는 聖明王으로 표기되어있다한다
<삼국사기>에는
 '명민하고 비범하며 결단력이 있어
나라 사람이 성왕으로 칭하였다'라고 쓰여있을 정도로
비범한 인물이였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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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인들의 삶은 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한성시대의 몽촌토성과 풍납토성,
웅진시대의 공산성,
사비시대의 사비도성 등이
백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였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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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공산성과 부여 부소산성의 주변에는
도성 방어 체계와 연계하여 많은 산성을 만들었고
사비도성은 왕궁을 비롯한 관청 건물, 사원, 도로, 수리시설 등이
나성(羅城 - 외성) 안에 배치되어 있는
계획 도시였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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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기둥을 세우고 나무판을 댄 뒤
진흙을 쌓아 성벽을 만드는 기법과
나뭇가지를 흙 속에 넣어 쌓아 흙이 미끄러져 내리지
않도록한 축성 공법은
백제인들의 우수한 건축기술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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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발전된 축성 기술은
일본에 전해져
일본 고대 성곽의 원류를 아루었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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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 이후로
철제농기구가 보편적으로 사용되면서
논농사 뿐만 아니라 밭농사에도
노동력이 절감되고
넓은 농토를 경작할 수 있게 되어
농업생산력이 향상되었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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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이용한 쟁기의 사용은
작업 효율을 크게 높여 농업생산력을 증대시켰고
4~6세기까지의 밭유구가
경기도 하남 미사리 유적에서 발굴되었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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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에서는
포(布), 견(絹), 마(麻)등을 조세로 낼 만큼 직조가 일반화되었고
주된 생산자는 대부분 여자로
가내수공업으로 널리 보급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이렇게 생산된 직물은 자급자족하거나
조세로 내고
남은 생산품을 시장에서 다른 물건으로 교환하기도
했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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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금, 은, 청동, 철 등을 이용하여
무기, 생산도구, 장신구, 공예장식품,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금속제품을 만들었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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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상업은
교역의 장소인 시장은 관청이 소재한 도성과
성문 안팎의 큰길,
수문이 발달된 항구 등을 중심으로 들어섰으며
교역물품으로는 각종 생활용품이
물물교환의 형태로 거래되었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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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건축물은 크게 궁궐, 고분, 불교사원으로 구분되는데
무왕대에 만들어진 연못(궁남지0과
벽돌을 아치형으로 축조한
공주의 무령왕릉과 송산리 6호분에서
백제의 토목,
건축기술이 상당한 수준이었음을 확인되었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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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백과에서 칠지도에 관한 글을 옮겨 옴 -

길이 74.9cm이고 단철로 만든 양날 칼이며
칼의 몸 좌우로 각각 가지칼이 3개씩 뻗어
모두 7개의 칼날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칠지도' 라는 이름이 붙었다
칼몸의 앞과 뒤에는 60여 글자가 금상감되어 있고
그 외곽을 가는 금선으로 둘렀다
칠지도의 형상은 신앙의 대상을  도형화한 것으로 보이며
이는 백제왕권이 하늘과 연결되는 신성성,
즉 초월적인 권위가 반영되어 있으며
천손을 자처한 백제왕의 역활과 권위를 과시하는
주술적 성격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칠지도는 일본 나라 현 텐리 시에 있는
이소노가미 신궁에 봉안되어 있다한다
<나혼쇼키> 신공기에
백제가 왜에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제작연대는 369년으로 알려져 있다한다
 
문화단지 내에 있는
천정전 마당에서 외줄타기 공연이 시작되었다고
그곳으로 빨리 모이라는 사회복지사의 말소리를 따라
다급히 칠지도를 폰에 마지막으로 담으면서
오후 2시경 백제문화관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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